몇 년 전에 신작으로 번역 출판된 것을 발견하여 사 두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된 책이다.
내용을 간추려서 줄거리를 먼저 회상해보자면,
우선 진 브로디라는 선생이 주인공이다. 브로디 선생은 자신의 사상에 자부심을 가지고 너희들을 '크림 중에 크림'으로 만들어주겠다라는 일념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상이라는 것이 당시 다른 여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별나다면 별나고, 위험하다면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독보적인 페미니스트이며, 현대문학을 무시하고 고전만을 찬양하며, 아이들이 학교의 전통이나 관례에 무비판적으로 반항하도록 교육하고, 파시즘에 대해 별다른 고찰없이, 오히려 히틀러를 나쁘지 않게 보는 듯한 묘사를 하는 것 등. 이런 사상과 가치관들은 아무런 검열이나 주의도 없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방치/주입되었으며, 더욱이 학생들의 미래를 단정짓듯이 툭툭 내뱉는 말은 (비록 의도하지 않았을지언정) 부족한 점이 있는 학생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장하여 아이들이 특정 학생과 어울리는 것을 심적으로 꺼리도록 부추기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브로디 선생은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듯한 묘사가 있으며, (그래서 선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틈만 나면 학생들과 수다를 떠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교장이 브로디 선생을 쫓아내려는 구실을 잡고자 열심히 노력해보지만 딱히 트집잡을만한 일이 없어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런데 이러한 교사들의 질투와 정치적 사담까지도 브로디 선생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일일이 특별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하소연하듯이 모조리 털어놓는다.
여기에서 또 브로디 선생의 교육관이 드러나는데, 브로디 선생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내면을 끄집어내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마치 "이미 성장을 마친 어른을 대하듯이" 자신의 생각들을 여과없이 마구 풀어놓는 것이었다.
이런 브로디 선생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선택받은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 브로디 선생을 만나서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브로디 무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하며 자랐는데, 커가면서 점차 스스로의 가치관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 때 가장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학생은 '샌디'이다. '샌디'는 브로디 선생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고 흡수하는 모양새를 보인다.
그러다보니 샌디는 브로디 선생이 사랑했던 로이드와 금단의 연인관계가 되기까지하는데,
이 애정 관계도 웃긴 것이, 브로디 선생이 좋아하는, 독신이고 한쪽 팔이 없는 미술 선생인 로이드는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이고,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로더라는 음악 선생은 순수하게 브로디 선생을 좋아하는데, 브로디 선생은 그러한 로더의 마음을 이용하여 바지 애인으로 로더를 써먹으면서 누가봐도 알아차릴 수 있을정도로 로이드의 애정을 열망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브로디 선생의 애제자인 샌디는 어느 순간 로이드와 유사 연인이 됨과 거의 동시에, 브로디 선생의 흠을 잡으려고 안달이던 교장에게 결정적인 제보를 하게 되는데(그것은 브로디 선생이 파시스트라는 것이었고), 이로써 브로디 선생은 본인의 전성기에서 한순간에 몰락하게 된다.
이 일로 충격을 크게 받은 브로디 선생은 이른 죽음을 맞는다.
또한 브로디 선생은 죽기 전까지 '날 배신한 제자가 누구일까'를 중얼거리며, 샌디에게 항상 속내를 털어놓곤 했는데, 결과적으론 샌디가 자신을 배신했음을 깨달은 채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다. 사실은 샌디를 의심하는 마음에서 계속 떠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샌디는 자신의 배신에 대해 마치 속죄하듯이 수녀가 되어 다른 모든 제자들 중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순결하고 고귀한 대접을 받는 삶을 살게 된다. 전체적으로 영화 어톤먼트와 디태치먼트가 생각나는 책이었다.
고발자가 어떤 죄를 정죄/속죄하고자 하는 죄책감으로 인해 가장 깨끗하고 올바른 일을 선택하게 되더라는 것이 어톤먼트를 떠올리게 했고,
선생님의 행실에 따라 아이들의 신념과 가치관이 형성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영화 디태치먼트와 유사했다. 이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하게 된다면
샌디가 잘못했냐 브로디 선생이 잘못했냐 가치 판단을 하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브로디 선생이 더 죄가 크며 자신의 죗값을 자신의 언행으로 인해 단순히 되갚음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제자의 배신이라고 하기에는 자신이 제자를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도록 키우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덫에 빠졌다고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샌디가 하는 마지막 말도 압권이다. '배신이란 충성의 의무가 있을 때만 가능한 법이지'라면서 자신의 잘못을, 애초에 잘못으로 정의될 수 없는 관계였다며 정당화한다. 나는 샌디의 이 마지막 대사가 현대 개인주의 사회의 이기성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주인공인 브로디 선생의 파멸이 가장 핵심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파시즘같은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는 결국 자신의 무리에 의해서 스스로(내부적 분열로) 몰락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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